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키예-이란-아랍권 관계 (문단 편집) === 서기 6세기 ~ [[정통 칼리파 시대]] === 이슬람이 발흥하기 이전 [[아라비아 반도]]는 사산 왕조의 영향력이 강하던 지역이었다. 사산 왕조는 위성 국가 [[라흠 왕국]]을 이용하여 아라비아 반도의 [[베두인]] 유목민들을 압박하였으며, 동시에 [[예멘]] 일대의 [[에티오피아]] 세력을 격파하고 [[예멘인]]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 주민들과 페르시아와의 상호 관계를 비교하자면 칭기스칸 시대 직전의 몽골고원의 유목민들과 금나라의 관계와도 유사하였다. > 왜 하필 7세기에 [[무함마드]]라는 지도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일까? 왜 하필 아랍 부족의 통일과 군사적 성공이 7세기에 일어나고 가능했던 것일까? 패트리샤 크론(Patricia Crone)은 바로 6세기 말과 7세기 초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했던 외세의 영향과 침투, 개입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6세기 말과 7세기 초에 이르러 사산조 페르시아의 영향력은 동부 아라비아 반도와 예멘 그리고 시리아 사막에서 [[히자즈]]까지 이르렀으며, 비잔틴 제국 또한 시리아 사막을 통해 서부 아라비아에 손을 뻗치는 동시에 동맹인 에티오피아를 통해서는 예멘 지역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크론은 "근대에도 아라비아 반도가 이처럼 외세의 영향력에 잠식된 적은 없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이슬람은 침투해오는 외세에 맞서 그들 고유의 가치와 정체성, 문화를 지켜내기 위한 아랍인들의 저항이었다. >---- > [[https://harmlessmostly.tistory.com/33?category=920274|출처]] 7세기에 [[아라비아 반도]]에서 [[이슬람교]]가 발흥한 이후, [[정통 칼리파 시대]] 무슬림들은 [[사산조 페르시아]]를 완전히 정복하였다. 이 과정에서 무슬림들은 중앙아시아의 여러 투르크 세력들과 경계를 마주하게 되었다. 사산조 페르시아를 정복하기 이전 아라비아 반도의 무슬림들은 투르크인들과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대신 예언자 무함마드가 투르크인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는 하디스가 남아있다. > حَدَّثَنَا سَعِيدُ بْنُ مُحَمَّدٍ، حَدَّثَنَا يَعْقُوبُ، حَدَّثَنَا أَبِي، عَنْ صَالِحٍ، عَنِ الأَعْرَجِ، قَالَ قَالَ أَبُو هُرَيْرَةَ ـ رضى الله عنه ـ قَالَ رَسُولُ اللَّهِ صلى الله عليه وسلم " لاَ تَقُومُ السَّاعَةُ حَتَّى تُقَاتِلُوا التُّرْكَ صِغَارَ الأَعْيُنِ، حُمْرَ الْوُجُوهِ، ذُلْفَ الأُنُوفِ، كَأَنَّ وُجُوهَهُمُ الْمَجَانُّ الْمُطَرَّقَةُ، وَلاَ تَقُومُ السَّاعَةُ حَتَّى تُقَاتِلُوا قَوْمًا نِعَالُهُمُ الشَّعَرُ ". >---- > 하나님의 사도(ﷺ)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심판의 날은 그대들이 투르크인들과 싸우기 전에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들 투르크인들은 눈이 작으며 피부색이 붉고 코가 낮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안면은 가죽이 덮인 방패와도 유사합니다. 심판의 날은 그대들이 털신발을 신은 사람들과[* 당시 아랍인 등 중동 사람들은 샌들을 신었다.] 싸우기 전에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 > 사힛 알 부카리에서 발췌[[https://sunnah.com/bukhari:2928|#]] 후대의 하디스 학자들은 해당 하디스를 13세기 몽골 제국의 이슬람권 침략 및 칼리프 시해로 해석하고 있지만, [[마흐디 운동]] 등등 반튀르크 성향 아랍인들은 종종 해당 하디스를 확대해석해서 무슬림 투르크인들까지 모조리 적대해야 한다는 근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아랍 무슬림들은 사산조 페르시아를 정복한 것을 계기로 이슬람 [[샤리아]]에는 페르시아의 행정 및 법률이 흡수되었다. > 히즈라 15년(서기 636년) 당시 칼리파인 우마르는 정복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페르시아 군주들의 재산들이 무슬림들의 창고에 쌓이자, 이를 어떻게 분배해야 공정한 분배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 ‘마르주반’이라는 이름의 한 페르시아인 관료가 그에게 간언했다. > ||신앙인들의 지도자이시여. 페르시아 황제들에게는 "디완"이라는 회계 체계가 있는데, 여기에는 세입과 세출 내역이 빈틈없이 기록되고 봉급에 대한 내역과 명단이 계급별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 > - 알 파크리 Al Fakhri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